[등불을 켜며―최낙중] 그라운드 제로와 청교도정신

| 기사입력 2002-11-22 17:50 | 최종수정 2002-11-22 17:50

지난달 부흥회 인도차 뉴욕을 방문했다. 작년 9월11일 테러범들에 의해 무너져버린 세계무역센터가 서 있던 곳을 찾았다. 안내인은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곳을 가리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고 부릅니다”허드슨 강변도로를 따라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과연 아무 것도 없었다. 빈 땅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옆 작은 공원의 광장에는 졸지에 명을 달리 한 사람들의 유품이 걸려 있었다. 세상을 떠난 자들의 옷 모자 신발 등 수만점이 걸려 있었다. 소방관의 모자와 신발이 유독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은혜의 평화가 그대와 함께 하기를(grace and peace to you)”이라는 글이 시선을 잡아끌었다.요즘 뉴욕의 어린이들에게 “너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나는 소방관 아저씨가 될래요. 나는 경찰관 아저씨가 될 거예요”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처참한 ‘붕괴의 날’에 소방관과 경찰관들이 보여준 용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위험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위층으로,위층으로 올라가던 그 용기…. 그들은 무너진 빌딩에 갇힌 사람들에게 외쳤다. “속히 나가십시오. 서둘러 나가십시오” 결국 소방관과 경찰관 300여명이 희생됐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구조됐다.미국 어린이들의 가슴에는 남을 살리기 위해서 죽은 사람이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자리잡은 것이다. 110층인 세계무역센터 한 층의 건물바닥은 1100평. 그런 건물 2개가 사라졌으나 지금 미국은 그 자리에 전보다 더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세울 계획이다. 이를 위해 모금한 돈이 예산의 250%을 넘었다고 한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다. 자유분방한 것처럼 보여도 어려울 때 힘을 하나로 뭉쳐 큰일을 해내는 국민성이 세계 제일의 나라가 되게 만든 것이다.미국을 지탱하는 무서운 힘은 청교도 정신이다. 보스턴에는 청교도 4대정신을 새긴 기념탑이 서 있다. 기념탑 맨 위의 가장 큰 글자는 믿음(Faith)이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을 나타낸 말이다. 그 다음은 자유(Liberty)다. 그 자유는 폭정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러나 참자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에서만 얻을 수 있다. 청교도의 두번째 정신은 교육(Education)이다. 교육의 목적은 지혜를 얻음에 있고 교육의 기회는 젊은이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청교도 정신이다. 그래서 미국은 오늘날까지 비록 불법 체류자라 할지라도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나 참교육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그 믿음에서 싹튼다.청교도의 세번째 정신은 법(Law)이다. 법은 정의가 있어야 하고 또한 긍휼이 있어야 한다고 새겨져 있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죄된 사람이라도 중심으로 뉘우쳐 회개하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 청교도 정신이다.청교도 정신의 네번째는 도덕(Morality)이다. 이 도덕은 예언자 정신이 있어야 한다. 또한 복음적(Evangelist)이어야 한다고 새겨져 있다. 도덕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대통령이라도 범죄하면 법 앞에서 공평하게 처리하고 낮고 천한 사람이라도 보호를 받게 한다. 청교도 정신은 알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다.창조주가 처음 인간을 지으실 때 부여해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영성과 양심과 사회성이다. 영성은 신과의 관계이며 양심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다. 사회성은 이웃과의 관계다. 양심이 바르면 사회성이 회복된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참사람이다.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길이다. 언젠가는 빈 손으로 세상을 떠난다. 우리 모두에게도 언젠가는 ‘그라운드 제로의 날’이 오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남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을까. 뉴욕의 황량한 비극의 현장에서 필자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 자녀들을 ‘커서 소방관 아저씨가 될래요’라고 말하도록 키우자”최낙중 목사(서울 관악교회)